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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실직 중
남편이 퇴직 당한지도 1년이 지났다.
남편은 지난해 8월, 36년 동안이나 몸담았던 초등학교 교단에서 내려 와야만 했다.
교단은 남편에게는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 모든 것이었는데 시간이 가고 세월에 밀려 정년퇴임이라는 미명 아래 퇴직하고 말았다.
예정되고 각오했던 일 이였지만 퇴직 날이 되기 전부터 남편은 예민해졌고 정해진 날은 참으로 빠르게 왔다.
어쩌면 36년간보다도 더 빠르게 달려들었던 것 만 같았다.
하늘마저 도 검게 물들었던 탄광촌 마을 학교 관사에서는 신혼 아닌 신혼살림도 했었다.
아이들을 시댁에 떼어놓고 지내야 했던 일은 가슴 아팠지만 이곳저곳 남편을 따라 여러 곳에서 보따리를 싸고 풀며 살아냈다.
남편은 퇴임하기 전에 교장이 되길 원했지만 교감으로의 퇴임식을 해야만 했던 남편은 많이 아쉬워하였다.
퇴임 전부터 퇴직 후에 남편이 할 일을 머리 맞대고 궁리를 하고 또 했지만 뾰족한 일이 없었다.
기원이 어떨까 하며 기원을 찾아가 봤는데 담배 냄새가 참기 어렵다며 포기했다.
학원을 해 보면 어떻겠냐니까 학교에서가 아닌 곳에서는 싫다고 했다.
남편의 성격을 좋게 말하면 고지식 한 것이고 제대로 평가하면 융통성이란 약에 쓰려고 해도 없을 듯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이라서 학교 졸업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의 스승이 학원을 냈다면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할 텐데 남편은 그런 것이 싫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파트 경비 일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물건 파는 장사를 하지도 못할 것만 같다.
이런저런 밤에는 궁리하고 아침이면 포기하고 그랬다.
퇴직하고 처음에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밭이 있어서 아침 먹고는 그곳으로 갔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씨앗 심으며 서로 칭찬하며 손뼉 쳐주고 채소가 자라면 봉지에 담아 가지고 와 맛나다며 먹었다.
새로운 일 거리에 남편도 좋아라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나도 남편도 그곳에 가지 않는다.
남편은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씨앗 심어 키우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남편이 퇴임하기 전부터 작은 봉사 단체에 나가고 있었다.
나가는 날에는 아침에 나가 저녁이 돼야 돌아오는데, 남편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자고 덤빈다.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 밸 소리에도 예민해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누라 치마꼬리만 잡고 늘어지는 상황이 힘들었다.
남편이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온다며 불평도 많이 했는데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 지금은 때때로 숨이 차온다.
지금까지도 남편의 기상은 5시 30분이다.
6시 30분이면 아침을 먹는데 1년 전만 해도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을 너끈히 해 치웠었는데 지금은 젓가락으로 밥알을 헤아릴 때가 많다. 반찬에 신경을 더 쓰고는 있지만 소용이 없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더니 그것 역시 그만뒀다.
기운이 넘쳐났던 친구들이 거의 직장 잃고 심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며,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에는 더욱 우울해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36년간의 습관은 바꿔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말 수가 적은 남편은 어느 날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
엄마 기다리는 아이처럼 측은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결혼시켰고 생활은 연금으로 별로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 가슴속이 텅 빈 채로 살아가는 남편 때문에 늙어가는 아내의 온몸에서도 싸~한 한기가 맴돈다.
주위 사람들은 아이들 결혼해 잘 살고 연금 나오고 집 있고 한데 즐기며 살라고 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 선생 사모님으로 30년을 살다 보니 외향적이었던 성격도 사모님으로 뿌리를 내렸다,
미니스커트 입고 명동거리를 누볐었는데 선생 사모님은 신사임당을 닮아야 한다며 예쁘지 않은 치마에 예쁘지 않은 옷들만 걸치고 살았다. 바지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그런 차림으로 살아야 했던 이유는 시월드의 대표 급인 내 시어머니 때문 이였다.
시어머니는 교사인 당신 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셨다.
아마 시어머니는 대통령 자리하고도 바꾸지 않을 것 같다.
남편도 그렇지만 시어머니는 내가 바지와 울긋불긋한 옷을 절대로 입지 못하게 해서 몇 번 부딪치다가 내가 포기했다.
홀 시어머니와 홀 시할머니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 못 살겠다고 보따리를 싸려는데 뱃속에서 쌍둥이가 신호를 보내와서, 봇짐 풀어놓고 아직까지 살고 있다.
이제는 울긋불긋한 옷을 차려입고 반짝이가 수 놓인 쫄 바지도 입어야겠다.
남편을 졸라 노래방에도 가고 산에도 오르자고 해봐야 하겠다.
1년 새에 할아버지가 돼버린 듯한 남편을 위해 살이 탱탱한 닭 한 마리와 전복 세 개를 샀다.
대추와 인삼은 집에 있으니 오늘은 모든 재료를 듬뿍 넣고 우리 부부의 만찬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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