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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내 아버지는 팔순을 넘기신 지도 오래됐지만 어머니가 계실 때만 해도, 허리도 굽지 않으셨고 목소리도 천둥소리만큼 건강하고 당당하셨다.
갑작스레 엄마가 하늘로 떠나신 후 홀로 계신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셔 오려고 간곡히 청했지만, 아버지는 그때마다,
“나는 여기 있을 란다” 여기가 좋아, 여기서 니들 어미 보냈고 너희들을 키웠으니 나도 여기에 묻힐 란다.”
하시며 거절 한지도 4년이 지났다.
한 달에 한두 번 밑반찬이나 필요한 약을 가지고 아버지 집에 가는데 뵐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모습에 가슴속이 아리고 쓰리다.
김치, 된장찌개 거리를 한 끼니 분량으로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지만 며칠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 있기에 아버지에게 볼멘소리도 많이 했다.
“아버지, 꺼내서 레인지에 돌려 드시면 되는데 왜 끼니를 거르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식사를 거르시면 제 속이 좋겠어요?
하며 언성을 높이면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미안해하며 변명을 하신다.
마을회관에서 어른들께 점심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버지는 남자 노인은 별로 없으시고 할머니들만 많다며 잘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가사도우미가 와서 청소와 빨래를 도와주신다고 하지만
원래 말 수가 적으신 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서지 않고 책을 보거나 잠을 주무시는 것 같다,
사람의 입김이 없는 아버지의 공간은 마치 무덤 속 같다는 생각을 갈 때마다 하게 되어 그때마다 우리 집으로 가시자고 졸라도 싫다고만 하셨다.
그렇게 홀로 계신지도 어 언 4년을 넘긴 오늘 아버지가 보내신 택배를 받았다.
커다란 사과 상자 안에는, 단감 몇 알, 쪽파, 참깨, 동부 콩, 호박 잎, 고구마,,, 등등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텃밭에서 수확한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넓은 텃밭에다 이것저것을 심고 가꿔서 우리 집 식탁을 풍요롭게 해 주셨는데 홀로 남겨지신 아버지는 텃밭 가꾸기를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기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마음에 병이 들어,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텃밭에는 잡초가 무성해 저서 아버지의 집을 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지난 이른 봄날, 폐가를 보는듯한 아버지의 집 텃밭에 내 키보다도 더 높게 자란 풀을 뽑아내다가 나는 그냥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엄마가 계실 때 텃밭에는 풀 하나 돌멩이 하나 보이지 않고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부부애가 각별하셨던 두 분은 봄 이 되면 텃밭에서 웃음소리로 땅을 다듬고 씨를 뿌리셨다.
그랬던 텃밭이 엄마를 잃고 나서는 묘지처럼 어둠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통곡하고 또 울었다.
딸의 통곡 소리에 놀라 뛰여 나오신 아버지가 허둥대며 이유를 물으시기에 나는 앞뒤 없이 원망을 퍼붓고 말았다.
“아버지, 엄마를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사시면 되겠어요?
저의 집에도 안 가시겠다면 뭔가 하셔야죠? 엄마 만나러 가실 날만 기다리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 실 거예요? 엄마가 얼마나 아끼시던 텃밭인데 잡풀이 지붕까지 자라게 버려두시면서 어째서 여기 계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퍼붓고 올라왔다가 아버지에게 하였던 짓이 죄송스러워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제법 큼직한 굴비를 사 들고 아버지 집에 갔을 때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금방 면도를 끝낸 청년의 얼굴처럼 반짝반짝 빛 이 나는 텃밭은 밭고랑까지 나 있었다.
나는 잠시 과거를 잊은 듯, 열려진 대문 안으로 뛰여 들어가며
“엄마~엄마~하고 불렀다.
잘 다듬어진 엄마의 텃밭을 보는 순간 엄마가 기억됐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계셨던 아버지가 굽은 등을 펴시며 맞아 주셨다.
“에미 왔냐? 없는 어미는 왜 찻 누?,,,
“아버지, 밭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누가 했어요? 아버지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흥분하며 놀라고 있었다.
“으~응, 밭 말이냐? 그거 내가 했다. 쉬엄쉬엄하다 보니까 오래 걸렸어,
밭고랑은 이장이 와서 해 줬고,
이번 이장은 사람이 부지런하고 싹싹해 잘 뽑은 것 같 혀,,,
아버지는 백 점짜리 시험지를 자랑하시는 듯 행복한 얼굴이셨다.
지난번 왔을 때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다가 울었던 딸이 안쓰러우셨는지 삶의 끈을 다시 잡으셨던가 보다.
그 후에는 아버지의 시간은 온통 텃밭에 머무셨다.
엄마와 함께 했을 때처럼 엄마의 몫까지 씨를 심고 흙을 다듬으며 가꾸셨다. 생기를 잃은 듯하던 아버지의 두 눈에는 희망이 가득해지셨다.
깊은 주름 사이로 검게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은 80 넘은 나이를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굽은 등에 흐르는 찐한 땀 방울이 안쓰럽고 걱정은 되긴 해도 삶의 의지를 보여 주시기에 감사하고 기뻤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쪽파를 가슴에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딸을 위해 마지막 사랑을 보여 주시는 아버지의 거대한 언덕이었다. .
콩 한 뿌리 심고 딸의 행복을, 풀 하나 뽑아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텃밭에다 그리고 계신 것이리라.
“아버지의 텃밭에 가을 거지가 끝나면 겨울 동안 만이라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 시자고 또 졸라봐야겠다.
내 아버지는 몇 번의 봄을 텃밭에 계실 수 있을까?
그리고
딸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진 택배 상자를 몇 번이나 받고 눈물 흘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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