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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과 을(乙) 그리고 교만과 겸손

기사승인 2021.04.13  18: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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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라는 심청 사달(心淸事達)의 마음으로 처음과 과정 그리고 마지막까지 상선약수(上善若水) 같이 작은 '을'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갑 앞에서 더 당당함이 드러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소파 방정환의 ‘동심 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그리고 겸수익 만초손(謙受益 滿招損), ‘겸손은 더함을 얻고, 교만은 잃음을 부른다.’라는 교훈을 되새겨본다.

나무는 산과 다투지 않으며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않는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기 때문이 아닐까.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겸손「謙遜, 손순(遜順)」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을 말한다. 물은 욕심이 없다고 한다. 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찾아 흐른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겸손은 물과 같이 무르고 약한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을 가졌다. 겸손은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겸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이끈다.”라고 했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유명한 루소는 “겸손에는 창피가 없다.”라고 말한다.

 비슷한 말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가 있다는 말로 겸공(謙恭),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을 겸허(謙虛)라 한다. 흔히 겸손은 예로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미덕이라 하여 오만한 사람은 겸손의 덕을 배워야 한다고들 했다.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자비의 마음인 하심(下心)을 강조한다. 하심 하면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한다. 주역(周易)으로는 곤괘(坤卦)에 해당한다.

 영어로 겸손이라는 ‘humility’는 라틴어 ‘humus’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자신을 썩히어 만물에 자양이 되는 대지(大地)를 뜻한다. 인간과 인간성, 인간애라는 ‘human, humanity’라는 말도 모두 이 겸손, 곧 하심이라는 뜻의 ‘humus’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소파 방정환은 동심 여선(童心如仙)이라 하여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말을 남긴다. 흔히 우리는 어린애 같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 말은 ‘어린아이같이 철딱서니 없는(childish)’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겸손함(childlike)’이라는 좋은 뜻으로 이해가 된다. 

겸허(謙虛), 하심(下心)의 반대말은 태도나 행동이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말하는 교만(驕慢)·오만(傲慢)이다. 자만(自慢)은 자기 스스로 우쭐댐, 자기보다 다른 이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자기의 용모, 재력, 지위, 또는 지식 등을 믿고,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다. 

 인간의 기고만장(氣高萬丈) 한 아만(我慢)인 ‘hubris’, 이의 상징적인 인물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Achilles)이다. 불사신(不死身)이었던 그는, 그의 유일한 치명적 결함인 그의 뒤꿈치 아킬레스의 건(腱)에 화살을 맞아 죽으니, 그것이 곧 지나친 아만(我慢, hubris)의 상징이었다. 다시 말해 아만(我慢)은 불사신(不死身)도 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희랍신화에서는 이 ‘hubris’가 기독교의 원죄와 불교의 무명(無明)처럼, 모든 불행과 사악함의 근본으로 본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를 모두 눈 아래로 보면, 배움의 기회를 잃는다. 겸손해야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도덕경(道德經)의 말처럼, 지위 여하를 떠나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사람이 모인다. 사람과 함께 다양한 정보도 모이고, 자연스럽게 소통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다.

 겸손은 내가 늘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교만은 내가 늘 미흡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겸손은 미안한 마음이고, 교만은 서운한 마음이다(언론인에서 목회자로 들어선 조정민의 ‘인생은 선물이다.’ 책 속에서 따옴).

 성경의 신약 서인 마태복음 23:11~12에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한다. 

 주역(周易)에도 만초손(滿招損)하고 겸수익(謙受益)이니라. 곧 ‘겸손은 더함을 얻고, 교만은 잃음을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곧 자만(自慢)하는 사람은 손해(損害)를 보지만, 겸손(謙遜)한 사람은 이익(利益)을 봄을 뜻하는 말이다. 서경(書經) 제1편 우서(虞書, 요임금과 순임금의 치적을 기록한 문서로 엮어져 있음.) 제3장 대우모「大禹謨, 대우(大禹), 즉 우왕이 신하 시절 순임금에게 올린 모(謨), 곧 좋은 의견 또는 훌륭한 건의를 가리킨다」에 등장하는 구절이다.「명심보감」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에도 나온다「 ‘노자도덕경’ 제6장 <곡신 (谷神)>,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bjhosting.kr)」.

   
방정환 묘역


 이렇게 자기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어느 발판을 밟고, 아니면 탁월한 실력 등으로 그 자리에 높아지고 컸던..... 그 자리가 영원불변의 자리가 아닐진대 열린 겸손의 자세로 섬기는 자세는 잊지 말아야 함이련다.

 우리가 세상을 가만 보면 아이들까지 자기를 높여주면 좋다고 한다. 높아질 실력이 없어도 세상 모든 사람이 높아지려고만 하지 낮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을 밟고서라도, 넘어뜨려서라도 올라가려고 하고, 어떤 수단 방법을 써서라도 서로들 올라가려고 경쟁이고 투쟁함은 세상 탓일까. 

 어떤 이는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그 사람이 지닌 역량보다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하여 감당 못 할 일을 자꾸만 벌이다 결국 주변 사람들이 뒷수습에 고생하는 경우들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자신을 과소평가한다. 충분히 그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도, 자신을 위축시키고 재능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지나친 겸공은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겸손은 남들 앞에서 비굴하게 굴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식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 모양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것, 그것이 겸손의 모양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용기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될 것이다.

 갑(甲)과 을(乙) 그리고 겸손과 교만은 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노자도덕경 8장에 유수부 쟁선(流水不爭先),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무는 산과 다투지 않으며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않는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수선리 만물(水善利萬物) 하고 이부쟁(而不爭)이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다투지 않는다. 물처럼 다투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말이다. 물은 낮고 더러운 곳도 마다치 않고 스스로 자리를 정하여 머문다. 그곳은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므로 다툴 이유가 없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의 모습과 가깝다. 

 노자도덕경(道德經) 8장 ‘무위 무심(無爲無心) 한 물의 선덕(善德) 편’에 나오는 글귀의 으뜸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최상(最上, 가장 좋은 것)의 선「善=덕(德)=도(道)」는 물과 같다.’는 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삶(上善)은 물처럼 사는 것(若水)이라고 읊는다. 

   
 

△심청사달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 Son Jae-Hyung), 종이에 먹, 32x125cm」 솔화랑 (solgallery.co.kr) 에서 따옴.
 도덕경에서 드러낸 칠선(七善)이 있다. 거선지(居善地, 겸손함), ‘물은 땅에 거(居)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순자(荀子)도 자신의 글 예론(禮論)에서 지자 하지극야(地者, 下之極也)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은 땅이다.”라고 말한다. 땅은 낮은 곳을 의미한다. 

 이는 잘 머무를 수 있는 땅을 골라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의 자리인지, 머물러도 좋은 곳인지를 보고 머물러야 한다는 것으로 사람이 자리싸움함은 내가 머물 자리가 아닌 곳에 머물려고 하고,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닌 곳에 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심선연(心善淵, 냉철함), 마음은 못처럼 깊은 것이 좋다는 뜻이다. 얕은 물은 작은 바람에도 출렁거리고 돌멩이 하나에도 넘친다. 노자는 생각이 깊은, 고요하고 그윽한 마음이 가장 좋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여선인(與善仁, 베풂), 선은 어질게 함께한다. 남을 어질게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관대하고 부드럽게 포용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언선신(言善信, 신뢰감), 말(言)은 믿음(신뢰)과 진실(眞實)이 있어야 좋다. 우리가 남하고 싸우는 이유는 말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말은 천 냥 빚을 갚게 만들기도 하지만 평생의 치적을 하루아침에 허물 수도 있다. 정선치(政善治, 조정 능력), 선은 바른 다스림이다. 다스릴 때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 물은 세상을 깨끗하게 해준다. 사선 능(事善能, 실천 능력),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을 하라. 일하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은 성공이 중요한 것이다. 동선 시(動善時, 적시성), 선은 때맞게 움직인다. 물은 얼 때와 녹을 때를 안다, 이것은 시간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무리가 따르고 남과 다투고,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불필요한 경쟁을 삼가야 한다. 유능한 뱃사공은 바람의 움직임을 보고 바다로 간다고 한다.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심청 사달(心淸事達)의 마음으로 처음과 과정 그리고 마지막까지 작은'을'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갑 앞에서 더 당당하게 해주면 안 될까. 

 공을 세워서 자랑하려 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칠선(七善)의 삶이란 녹록지 않다. 군림하려 하면 넘어질 것이고, 자랑하려 하면 그 공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마련이다.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일 수 있다는 말이다. 

 부유 부쟁(夫唯不爭) 하니 고(故)로 무우(無尤)라. 그저 다투지 않으니 탓할 것도 흠잡을 것도 허물도 없다는 말이다. 다투지 않음으로 실수도 잘못도 범하지 않게 되니 도를 체득한 성인의 모습도 이 물과 같다. 이처럼 노자의 자연스러운 삶은 남과 다투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에겐 그를 수 있으니 자기만 주장하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시견비견 시비시(是見非見 是非是), 본다는 것은 착각이며, 이것이란 이것이 아니다. 같은 뜻이라도 표현에 따라 그 이해와 깨치는 바가 다르며, 따라서 어려운 문자(文字, 유식한 체한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네.)만이 능사가 아니다. 

 인연이란 참 소중하다. 내가 좋다고 마냥 만날 수도 없고 싫다고 아예 안 볼 수도 없다. 이래저래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법구경(法句經, 불교 경전)」에서는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고, 좋아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다.”라고 설파했는가 보다. 

 성현(聖賢)들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라고 말한다. 자성(自省)의 길, 남을 편안하게 하려는 마음, 남을 섬기려 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은 분명 우리 곁에 늘 있다.
 

중랑방송 webmaster@cnbc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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