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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한번 써 보지 못한 나'- 신춘몽

기사승인 2021.04.29  15: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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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능력이 1도 없는 사람이라서 회사에 출근해서 내 명찰을 목에 걸어 보지 못했다.

취준생들의 소망 이라는 사직서 작성해서 과장님,부장님 책상에 꽈당 소리가 날 정도로 던지고 발걸음도 무겁게 퇴장하고 싶었지만, 나는 낼 모래가 칠십 줄인데 아직도 해 보지 못했다.

그러고도 밥 잘 먹어서 고도비만 되었고, 허리는 좀 아프지만 걷고 ,학습장순례도 잘 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부러워 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온 날이 살아 갈 날보다 훨씬 많아진 오늘은 ”미스 신,,, 서류 작성 다 했어요? 야근해서라도 해서 다 끝내요,

오늘 회식 있어요. 승진,,, 뭐 그런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채로 소풍을 끝내야 하는 것에 진한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지금은 사직서를 써 보지 못한 한풀이를, 여기저기 학습장을 찾아다니며 위로받고 있는데,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학 강의실에 앉아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가슴이 설레고 어깨가 나도 모르게 올라간다.

오늘은 가슴에 넣어 뒀던 사직서가, 친척 동생 때문에 들춰졌다.

동생은 딸과 아들을 둔 50대의 이혼한 사람이다.

동생은 능력 있고 성격 좋아서 직장에서도 서로 탐을 냈던 사람 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직장인으로서의 능력을 보여 줬지만 남편의 탈선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 되면서 직장 마져 잃어야 했다.

농사짓는 친정집에 살며 아이들을 성장시킨 후에 다시 재 취업을 하기는 하였지만 15년간의 공백은 너무도 가혹 했다.

동생에게는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일당직 자리가 주어 졌다.

비록 15년이라는 시간은 지났지만 15년 전에 맡았던 일을 하면서도 유급 휴가도 없고 유급 공휴일도 없는 일당직 이라는데,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을 받는 처지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현실에 순응하려는 생각에 좋은 척 감수하며 지내는데,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입사한 나이 어린 후배 직원의 무시는 때때로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고 했다.

명절 보너스 없는 것 ,무급 공휴일도, 월차가 없는 것 모두를 참을 수 있었는데 딸 나이의 후배 정직원의 버릇없는 무시 때문에 화장실에 가서 때때로 울어야 하였단다.

나는 사직서를 써 보지 못한 관계로 정규직의 위세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지만 직장은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삶을 위해 함께 하는 공간 이라는 생각인데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가 보다.

하긴 우리 집 유기견 두 녀석도 먼저 온 녀석이 겁 많고 어려서 인지 몇 달 늦게 우리 가족이 된 녀석이 먼저 온 녀석을 쥐 잡 듯 한다

혹시 나중에 온 녀석이 정규직 일까? 아니면 먼저 온 녀석이 뭐 딸리는게있는 것 일까 하는 필요 없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웃는다.

지금도 정규직 녀석은 침대를 다 차지하고 코 까지 골며 꿀잠을 자고 있는데 소심하고 겁 많은 선배 녀석은 의자 위에 동그랗게 말려 조용히 자고 있다.

어느 심심한 날, 두 녀석 들을 보호했던 센터에 두 녀석이 유기견이 되었던 기록을 알아 봐야 겠다.



중랑방송 webmaster@cnbc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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