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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때문에...방글라데시서 온 그는 1년에 100번 韓법정 선다(중앙일보 펌)

기사승인 2022.04.25  17: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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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민 010-9394-2950

“처음에는 불안하고 몸이 좀 떨렸어요. 혹시나 실수할까봐”
9년 전 처음 법정에 섰던 사법통역사 양모민(49·남)씨가 했던 생각이다. 누군가의 ‘입’이 되어주는 그는 현재 한국 법원의 재판, 경찰·검찰의 조사 등에서 사법통역사로 방글라데시어(벵골어) 통역을 한다.

   
지난 16일 서울 도봉구의 한 사무실에서 벵골어 사법통역사 양모민(49)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함민정 기자


회계학 전공 방글라데시 청년, 한국 법정에 서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양씨는 23살이 되던 1996년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 오게 됐다. 첫 직장은 서울 을지로에 있었다. 3년간 출판사에서 지게차 운전부터 영어가 필요한 무역 관련 업무까지 했다. 이후 6년간 학원 영어 강사를 했다. 양씨는 “고생을 엄청 했다”며 웃었지만, 그 사이 그의 한국어는 늘고 있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미소는 더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됐다.

벵골어 전문 사법통역사 양모민씨는 서울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 등 법원에서 외국인들의 통역을 돕고 있다. 양모민씨 제공

벵골어 전문 사법통역사 양모민씨는 서울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 등 법원에서 외국인들의 통역을 돕고 있다. 양모민씨 제공

그는 현재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의 방글라데시 통역상담사로도 일한다. 입금 체불이나 성폭행 등 피해를 보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을 돕는다. 그의 이름 ‘모민’은 믿음직스럽고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뜻하는 방글라데시어 ‘모멘(MOMEN)’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느 날 법원에서 일하던 한 지인이 양씨에게 “한국어를 이렇게나 잘하는데 법원 통역도 해 보지”라고 독려하면서 2013년부터 서울행정법원에서 사법통역사의 세계에 들어섰다. 이전에도 통역을 해왔지만, 사법통역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통역인이 잘못하면 피고인이 큰 피해 볼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지난 16일 기자가 방문한 사무실에 있는 ‘법정통역인 편람’에는 형광펜과 필기 자국, 손때가 가득했다.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5번 이상 정독했다고 한다. 양씨는 “사건 관계인이 사투리를 쓰면 너무 어려웠다. 모르면 실수할까 봐 지금도 새벽까지 공부해요”라며 웃었다.

양모민씨가 사법통역사를 준비하며 공부하던 책. 5번 이상 정독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한국의 사법, 입법, 행정을 두루 공부하다보니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함민정 기자

양모민씨가 사법통역사를 준비하며 공부하던 책. 5번 이상 정독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한국의 사법, 입법, 행정을 두루 공부하다보니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함민정 기자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국적자의 범죄는 2020년 172건이다. 2018년 106건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폭력이나 성범죄, 불법 체류 중 생긴 문제나 난민 인정 소송 관련 통역이 많다고 한다. 양씨는 2015년 법원행정처에 사법통역사로 등록됐고, 올해 서울중앙지법에도 전문 번역인으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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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범죄 늘자 사법통역사 필요성 증가

양모민씨가 경찰서에서 받은 통역관, 사이버방범단 위촉장. 가장 오른쪽은 사법통역사 자격증. 함민정 기자

양모민씨가 경찰서에서 받은 통역관, 사이버방범단 위촉장. 가장 오른쪽은 사법통역사 자격증. 함민정 기자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기소된 외국인은 2019년 4927건에서 지난해 5028건으로 늘었다. 외국인 범죄가 늘면서 양씨의 일도 많아졌고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양씨는 “문화가 달라서 어떤 나라에서 죄가 아닌 것이 한국에선 죄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양씨는 “한국어능력시험, 통역 경험 등을 토대로 법정 등재 신청을 하면 법원행정처가 검토해 등재한 뒤 관리한다. 1년에 100건 이상 법정 통역을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법정 통번역인 시험에서 소수언어에 대한 시스템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어·중국어 등에 비해 소수언어는 모의시험 등이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국제무대에서 최고의 사법통역사 되고 싶어요”

양씨는 2008년 귀화 신청을 해 이듬해 승인을 받은 한국인이다. 사법뿐 아니라 입법, 행정 등 한국 공부에 여전히 열심이다. 양씨는 “장관이 몇 명인지, 한국 정부 시스템을 알아야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사법 통역도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하고, 피고인의 정보나 사건 내용과 같은 비밀 정보를 절대 누설하면 안 되는” 조심스러운 직업이지만, “통역사님 믿고 용기 내서 진술했다”는 말을 들으면 한없이 뿌듯하다고 했다. 양씨는 이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통역사를 꿈꾸고 있다. 그는 “사법과 국제 분야를 다루는 통역사가 돼 방글라데시와 한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중랑방송 webmaster@cnbc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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